“성경은 하나님의 사람을 유능하게 하고, 그에게 온갖 선한 일을 할 수 있게 하는 것입니다.” (딤후 3:17)
(유대인들은 다양한 해석을 가지고 서로 토론하면서 성장하고 성숙해 갑니다)
60 평생 예수를 믿었고, 30년을 넘게 목사로 살아 온 내가 도대체 이해를 못하는 게 하나 있다. 왜곡되고 편협한 신앙 생활을 하는 사람들일 수록 늘 하는 말이 있다. “나는 성경 적이다!” 성경 적이라는 말도 선택적이라는 것을 아는가? 즉 누가 이 말을 하느냐, 누가 성경을 해석하고 있느냐 가 중요하다. 이단 치고 성경 적이 아닌 집단이 없다. 자기가 해석하는 성경이 진짜이고, 남들이 이해하는 성경은 틀렸다는 것이다. 이런 생각이 나를 미치게 한다. 흑백논리를 펴가면서 자기 해석은 성경 적이고, 다른 사람의 해석은 성경 적이 아니라는 것이다. 중간 지대가 없다. 모호한 것도 허용되지 않는다. 결론은 너무 도 자명하다. 그런 사람들만 모이면 싸움과 전쟁은 불가피하다. 내가 맞고, 우리 편의 생각이 옳으니, 너는 틀리고, 반대편은 타도해야 할 대상이 되는 것이다. 이런 사람들에겐 사랑해야 할 대상은 이미 사라져 버리고, 기독교의 순수성을 위해서 타도하고 고쳐야 할 대상들 뿐이다.
유대인들은 특별하다고 한다. 세계 인구의 0.2%밖에 안되지만, 노벨상 수상자의 25%나 되고, 세계에서 가장 부자인 사람의 25%가 유대인이라 한다. 무엇이 유대인을 특별하게 만드는가? 많은 학자들이 연구한 결과 그들을 독특하게 만드는 것이 탈무드 식 사고방식 이란 다.
우선 위의 그림에서 보듯 탈무드의 구성을 보라. 탈무드는 그들의 신앙 생활을 위해 필수적으로 읽고 연구하는, 유대인 성경이다. 먼저 “탈무드”는 “미쉬나”와 “게마라”를 통칭하여 부른다. “미쉬나”는 구전 전승으로 알려졌고, “게마라”는 여러 유대 문헌 들을 해설한 것이다. 그 외 나머지 부분들은 시대의 흐름에 따라 추가된 해석들이다. 학생들은 이 다양한 해석을 보며 어떤 해석이 더 합리적이고, 더 의미가 있고, 더 실질 적 인지를 항상 토론한다.
유대인들의 도서관
유대인의 도서관은 두 세 사람이 토론을 해야 하니까 늘 소란스럽다. 랍비 들은 자기 생각에 빠질 가능성이 많으니까 혼자 공부하는 것이 제일 위험하다고 한다. 그래서 항상 두 세 사람이 공부 파트너가 되어서 함께 토론 하도록 한다. 그리고 토론은 상대방을 이기기 위해서 가 아니라 더 좋은 대안, 더 좋은 생각, 더 나은 결론을 얻기 위한 것이다. 토론을 통해서 상대방의 관점을 이해하고, 내 관점을 이해 시키면서 서로가 성장하고 성숙해 간다. 토론을 통해서 생각은 정리되고, 개념은 확장된다. 시작도 없고 끝도 없는 토론을 통해서 그들의 생각은 공유되고, 교환 되고, 깊어지고 넓어진다. 혼란스러워 보이나 이 과정으로 그들의 사고는 더욱 세련되고 역동적으로 진화한다. 그래서 유대인들에게는 답을 제시하는 것보다도 좋은 질문을 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나는 탈무드 식 성경 공부를 사랑한다. 교회에서 내가 본 제일 위험한 사람은 흑백논리에 사로 잡힌 사람들이다. 자기 생각과 다르면 교회를 떠난다. 토론도 안해 보고, 상대방의 의견도 들어 보지 않은 채 이미 결론은 내려져 있어 요지부동이다. 그들은 새로운 것을 배우려 하지 않는다. 중간이 없다. 이미 답은 정해져 있고, 자신의 대답만이 정답이라고 믿는다. 성경 안에서도 아름답고 놀라운 이야기들이 많지만, 현대인들이 읽으면 불편하고, 일관 적이지 않고, 불확실한 얘기들로 가득한데 그것들은 무시하고 신경도 안 쓴다.
성경 해석에서 어떤 안경을 썼느냐? 성경을 해석하는 사람이 성숙하나 미숙하냐, 어떤 배경에서 자랐고, 어떤 환경에서 신앙 생활을 해 왔느냐 가 참 중요하다. 우린 하나님이 아니다. 내가 해석하는 성경이 완전무결 흠이 없다고 믿는 한 답만 찾는 답답한 사림이 된다. 이런 무모한 확신 때문에 노예 제도도 하나님이 만든 것이라 믿었고, 성경에서 그 근거를 찾아 흑인들을 착취하고 멸시하고 인간 이하로 취급했었다. 원주민들이 미신을 믿는다고 살해 했으며, 남자가 여자보다 우월하다고 성경이 말했다고 하면서 여성들을 무시하고 차별하였다. 모두 성경 적이라고 믿으면서 이런 차별과 박해를 일삼았다. 불과 몇십 전의 일이다. 선택적으로 성경을 읽었고, 자기들 생각을 증명하기 위해서 성경을 이용했다. 성경이 사람을 박해 하고 사람을 공격하고 급기야는 사람을 죽이는 살인 무기가 된 것이다.
성경은 다른 사람을 공격하기 위해서 읽는 책이 아니다. 자신에게 먼저 적용하기 위해서 읽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살인 무기가 된다. 예수님 당시 바리새인들이 그랬고, 서기관들이 그랬고, 사제들이 그랬다. 그들은 자신들의 성경 이해가 옳다고 믿었고, 그들의 잘못된 성경 해석과 왜곡된 확신 때문에 예수님이 돌아가셨다.
성경을 읽는 나는 누구인가? 방어적이고, 공격적이고, 나만 옳다는 자기 의에 사로잡혀, 늘 다른 사람을 판단하고 심판하는 사람인가? 아니면, 겸손하고, 상대방을 존경하며, 나와 다른 것은 인정하면서 배우고 성장하려는 사람인가?
새벽 기도가 9월7일 6시에 시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