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 오전 8시에서 12시 사이에 예배시간을 정합니다. 
  • 예배 드리기 좋은 조용한 장소를 가족 혹은 개인이 선택합니다. 
  • 성경과 찬송을 준비합니다. 
  • 예배 드리는 바른 자세로 예배에 임합니다.   
  • 두 사람 이상이 함께 할 경우 인도자를 정합니다. 

조용한 기도 Invocation 

    주님께 올리는 우리의 “간청”과 “외침”이 우리의 삶에 변화의 문을 열어 주기를 기원하며, 조용히 기도드립니다. 

Pray silently hoping that our “petition” and “cry out” open the gate of possibility and salvation.

찬송 Hymn             57장    즐겁게 안식할 날       

함께 드리는 기도 Prayer in Unison   (다음의 기도문을 함께 읽습니다.)

생명의 주 하나님, 우리에게 보는 눈을 주셨습니다. 몸을 보게하는 눈을 주셨음과 함께, 영혼과 마음의 빛을 알아보는 눈을 주셨습니다. 우리의 몸과 영혼과 마음에 주신 <눈>을 맑고, 밝게 열고 살아가도록 도와 주십시오. 혼탁한 세상에 휩쓸려 우리의 시야마저 혼탁해지지 않도록 도와 주시고, 어두운 세상의 자리에 서 있을 때, 우리의 마음과 영혼의 눈마저 어두워지지 않도록 지켜 주십시오.  주님의 진실되고, 넉넉하고, 깊고, 따뜻한 눈을 지닌 사람으로 살아가고 싶습니다. 주님의 영으로 우리의 눈을 닦아 주셔서, 맑고 밝은 마음과 영혼의 사람되어 살아가게 도와 주옵소서. 예배의 자리에서 주님 향해 시선을 고정하고, 예배자의 마음으로 서 있습니다. 우리의 생명을 밝은 빛으로 감싸 주셔서, 이 예배의 자리로부터 세상을 향한 소망과 치유와 회복의 은총이 흘러 나아가게 하옵소서. 주님 밝혀 주신 눈으로 세상을 걸어 갈 때, 앓는 몸을 안고 살아가는 이들 곁을 지나치지 않게 하시고, 몸과 마음의 허기를 안고 살아가는 사람들을 찾아내게 하시고, 구원과 희망에 목말라 하는 이들에게 밝은 눈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주님의 손과 발이 되어 살고 싶은 우리 모두가 예배의 장막을 펼칩니다. 거룩한 주님의 임재 안에 주님의 은총을 경험하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성경봉독 Scripture Lesson          마태복음 15:21-28

(마 15:21)○예수께서 거기서 나가사 두로와 시돈 지방으로 들어가시니 
(마 15:22)가나안 여자 하나가 그 지경에서 나와서 소리 질러 이르되 주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내 딸이 흉악하게 귀신 들렸나이다 하되 
(마 15:23)예수는 한 말씀도 대답하지 아니하시니 제자들이 와서 청하여 말하되 그 여자가 우리 뒤에서 소리를 지르오니 그를 보내소서 
(마 15:24)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나는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 외에는 다른 데로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노라 하시니 
(마 15:25)여자가 와서 예수께 절하며 이르되 주여 저를 도우소서 
(마 15:26)대답하여 이르시되 자녀의 떡을 취하여 개들에게 던짐이 마땅하지 아니하니라 
(마 15:27)여자가 이르되 주여 옳소이다마는 개들도 제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먹나이다 하니 
(마 15:28)이에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여자여 네 믿음이 크도다 네 소원대로 되리라 하시니 그 때로부터 그의 딸이 나으니라 

말씀 Sermon           경계에서 만난 두 사람                     최진용 목사

“The Canaanite Woman and Jesus” 

  (설교문을 예배 참석자 중 한 명이 읽습니다.)

<설교문>

<새벽>의 시간에는 특별함이 있습니다. 내게 다고 오고 있는 시간과 내가 걸어온 시간이 만나는 자리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아직 내게 오지 않은 시간과 이미 내가 지나온 시간이 함께 서 있는 자리이기 때문입니다. 아직 오지 않은 시간에 대해 우리에게는 기다림과 설레임과 소망이 있습니다. 새벽이라는 우리말은 ‘동쪽’을 뜻하는 순우리말 “새”가 ‘밝다’라는 말과 결합된 것으로, 이 뜻대로 이해하면, ‘동쪽이 밝아온다’는 의미입니다. 우리 인생에 ‘동쪽이 밝아 올 때’ 우리 인생에 밝은 창문이 매일 새롭게 열리는 것입니다. 어느 시인은 이 새벽의 설레임과 신선함을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새벽 안개 속을 거닐어본 사람은 압니다.
비록 남루한 이 삶 속에서도
그런 상쾌함도 함께 느낄 수 있다는 것을

걸음 걸음마다
오늘이 다시 열리고 내가 다시 태어나는
살아가는 일은
늘 그렇게 새롭게 새벽을 맞는 일인 것입니다

어제의 가난한 내가 아니듯이
벅찬 미래의 계획과 꿈과 노력으로
하루하루 움츠리지 말고
자신 있게 내가 하고 싶은 말과 일을 하며
내일을 두려워하지 않고 홀로
언제나 새벽처럼 시원하게 가는 것입니다

  • 나명욱, <새벽>

우리가 지금 살아가며 격려가 될 만한 표현을 담고 있는 글입니다. 어제의 힘겨움을 씼어내고, 움츠리지 말고, 두려워 말고 새벽처럼 시원하게 걸어나가자는 격려가 필요한 때를 우리는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 시 중에서, 새벽 공기를 마시며, 신선한 발걸음을 떼는 것을 ‘오늘이 다시 열리고, 내가 다시 태어나는 것’이라고 말하는 시인의 표현이 우리에게 싱그러운 기운이 솟아나도록 격려합니다. 그리고, 계절마다 새벽이라는 시간이 우리에게 선물하는 다양한 풍경과 기운이 있겠지만, 우리가 지나고 있는 계절인, 이 ‘여름의 새벽’이 우리에게 열어주는 <싱그러움>은 <짙은 생명의 기운>을 느끼게 해줍니다. 새벽을 맞이하는 숲과 나무와 새와 풀들이 발랄한 표정으로, 힘찬 호흡 가운데, 아침을 맞는 것을 우리가 보게 되기 때문이겠지요?  짙어가는 생명의 여름처럼 주님 곁에 살아가는 우리의 삶에도 푸른 생명의 기운이 짙어가기를 기원합니다. 

지난 몇 주 동안 여름이 펼쳐주는 생명의 정원을 이곳저곳 관찰하다가, 문득  우리의 주위를 물들이는 여름이 내쉬는 생명의 기운이 사실은, <땅>으로부터 나온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는 우리 눈 앞에 다양하게 펼쳐진 여름의 풍경에 눈길을 주고 살아가지만, 그 풍경을 떠받치고 있는 <땅>이 여름의 주역이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태양의 뜨거운 숨결을 마시며 땅은 분주한 여름을 보냅니다. 차영섭 시인은 부지런히 움직이는 땅의 모습을 그의 시, <여름의 땅>에서 이렇게 노래합니다.

여름엔 땅도 바쁘실 거에요 / 사람들은 덥다고 물로물로 가는데

땅은 꼭 해야만 할 일이 많거든요.

겨울 내내 참고 얼지 않게 붙든 뿌리랑/ 봄이 오자 사람들이 뿌린 씨앗이랑

봄의 땅이 애써 싹 트게 한 식물이 / 꽃을 피우고 열매를 자라게 해야 하거든요

좀 더 멋있고 튼실하게 키워서 / 가을에 오는 햇빛이 쏘옥 단물 들게 하네요.

우리의 눈은 땅 위에 살고 있는 숲과 나무와 풀과 꽃에 그 시선이 닿아 있지만, <땅 위>에 여름의 풍경을 그려내는 힘은 <땅 아래> 있습니다. ‘사람들은 덥다고 물로 가지만’ 땅은 여름 동안 할 일이 많기에, 뜨거운 태양빛을 한줌도 놓치지 않으려 그 태양빛 아래  꿈쩍도 하지않고 서서 바쁜시간을 보냅니다. 사실, 땅의 수고는 겨울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시인의 말처럼, 겨울 내내 뿌리가 얼지 않게 붙들어 주기 위해 땅은 시린 손을 비비며 뿌리를 감싸 주었습니다. 봄을 맞으며 땅의 품에 안긴 씨앗이 싹트게 하고, 싹이 돋아난 식물이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도록 돌보아주고, ‘좀 더 멋있고 튼실하게 커 주기를 바라며’ 가을의 햇빛에 그 식물을 넘겨주는 것이 <땅의 수고>이고, <땅의 열심>이며, <땅의 겸손>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세상을 두루 두루 다니시며 사람들이 딛고 서 있을 <땅>이 되어 주셨습니다. 풍랑이는 호수 위를 걸어 오셔서 제자들이 탄 배에 오르신 예수께서는 호수를 건너서 게네사렛에 이르셨습니다. 갈릴리 호수 북서쪽에 위치한 이 곳에서 사람들이 예수님을 알아보고, 주위의 온 지방으로 사람을 보냈고, 예수님 소식을 들은 병자들이 찾아 왔습니다. 그들은 예수께, 그의 옷술만에라도 손을 대게 해 달라고 간청하였고, 손을 댄 사람은 모두 나았습니다. 사람들의 생명이 서 있을 <땅>을 마련해 주신 것입니다. 

이후, 예수님께서는 두로와 시돈 지방으로 발걸음을 옮기셨습니다. 갈릴리 호수의 북쪽에 위치한 이 지역은 지금의 레바논의 베이루트 지역입니다. 마태복음 15:21-28은 예수님께서 이 지역을 가시다가 가나안 여인을 만나는 장면을 담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다가온 가나안 여인은 소리쳐 말했습니다. “다윗의 자손이신 주님, 나를 불쌍히 여겨 주십시오. 내 딸이, 귀신이 들려 괴로워하고 있습니다.” 여인의 외침에 무슨 이유에선지 예수님께서는 한 마디도 대답하지 않으셨습니다. 제자들이 예수님께 다가와서, 예수님을 향해 외치는 그 여인을 안심시키서 떠나 보내달라고 말했습니다. 절박한 상황에서 소리치는 그 여인의 간청을 예수님께서 속히 들어주셨으면 하는 바램이었겠지요? 하지만, 이에 대한 예수님의 대답은 우리를 더욱 의아하게 만듭니다. “나는 오직 이스라엘 집의 길을 잃은 양들에게 보내심을 받았을 따름이다.” 예수님의 거절에 다급함을 느낀 여인은 그 앞에 무릎꿇고 간청했습니다. “주님, 나를 도와주십시오.” 예수님께서는 간청하는 여인에게 ‘자녀들의 빵을 집어서, 개들에게 던져 주는 것은 옳지 않다’고 대답하셨습니다. 거절을 넘어서, 모욕에 가까운 이 말에도 여인은 돌아서지 않았습니다. 돌아서는 대신 다시 한번 간청합니다. “주님, 그렇습니다. 그러나 개들도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는 얻어먹습니다.” 

사람들은 예수님께서 여인을 향해 ‘개’라는 단어를 쓰셨던 것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지 고민합니다. 어떤 해석자들은 예수님께서 사용하신 ‘개’라는 단어가 헬라어로 “강아지”를 뜻하는 “쿠나리오스”이기 때문에, 경멸이나 모욕의 뜻으로 예수님께서 하신 말이 아니라고 설명합니다. 또 어떤 사람들은 예수님께서 여인의 믿음을 떠보시기 위해서 그렇게 말씀하셨다고 설명하기도 합니다. 이런 해석 모두가 이 장면을 대하며 우리 모두 당황함을 느낀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어떤 해석의 관점에 서더라도, 여인의 마음에 들었을 거절감과 모욕감은 부인할 수 없는듯 보입니다.  

‘거절하시는 예수님’과 ‘물러서지 않는 여인’이 대비되고 있는 이 장면에서 우리는 예수님께서 서 계신 자리에 <설 땅>을 일구어 내는 놀라운 한 여인을 만나고 있습니다. 그 여인은 개로 취급받아도 개의하지 않겠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지금 그에게 절박한 것은 딸의 치유 뿐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여인의 그 반응, 곧 <여인의 모성>과 <절박한 외침>이 예수님 마음에 <창문>을 열었습니다. 예수님께는 급박한 소명이 있었습니다. “이스라엘 집의 길을 잃은 양을 돌보는 것”이었습니다. 이 사명을 향해 분주한 발걸음을 옮기고 계시던 예수님께서는 유대지도자들과의 피할 수 없는 갈등 가운데 계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유대 율법주의자들이 행하고 있는 것이 ‘눈 먼 사람이면서 눈 먼 사람을 인도하는 길잡이 노릇을 하는 것’과 같다고 생각하셨습니다. 이런 생각을 갖고 계신 예수님을 향해 바리새파 사람들이 <분개>하고 있다는 것을 제자들이 예수님께서 알려 주었고, 이에 예수님께서는 두로와 시돈 지방으로 자리를 옮기셨습니다. 아마도 갈등의 중심에서 잠시 벗어나 계시고자 하셨던듯 보입니다. 이 발걸음 가운데 가나안 여인을 만나셨고, 이스라엘 집의 잃은 양을 돌보는 <사명>에 마음이 분주하셨던 예수님께서는 절박한 심정으로 외치는 여인의 손을 통해 <마음의 큰 창 하나>를 열게 되셨습니다. <낯선 가나안 여인>에게서 지금껏 어디에서도 만나지 않으셨던 <큰 믿음>을 보게 된 것입니다. 마태복음 15:28은 우리에게 그 장면을 이렇게 보여 줍니다. “그제서야 예수께서 그 여자에게 말씀하셨다. ‘여자여, 참으로 네 믿음이 크다. 네 소원대로 되어라.” 바로 그 시각에 그 여자의 딸이 나았다.”  

가나안 여인의 마음에 늘 안겨져 있던 <모성>은 생명을 키워내고, 일으키고, 열매맺게 하는 <여름의 땅>이었습니다. ‘사람들이 더위를 피해 물로물로 가는 뜨거운 여름’, 자신의 인생에 열린 ‘생명의 싹’인 ‘사랑하는 딸’이 병석에 누워있었고, 여인은 <절박한 모성>을 담은 <여름의 땅>이 되어 사랑하는 딸의 ‘살 길’을 찾고 있었습니다. 가나안 여인은 이스라엘을 위해 나타난 예수께 절박한 심정으로 믿음과 희망을 품었습니다. 하지만, “다윗의 자손”이신 예수님을 찾아온 가나안 여인은 ‘울타리 밖’에서 살아온 사람이었습니다. 아픈 딸을 돌보며 힘겨운 삶과 씨름하며 살아온 그가 주님께 무릎 꿇고 ‘주님, 나를 도와주십시오’하고 간청했을 때, 주님께서는 모두의 삶에 겹겹이 세워진 <벽>과 <울타리>를 그에게 상기시키셨습니다. 마침내 그 여인이 그 벽과 울타리 위에 올라서서 <절박한 모성>으로 주님 손을 더욱 간절히 붙잡았을  때, 주님께서는 ‘네 믿음이 크다’고 말씀하시며, 그 손을 붙들어 주셨습니다. 

유대인 예수님과 가나안 여인의 만남은 서로 다른 두 경계의 만남입니다. 언젠가 말씀드린 건축학의 용어 중에 “Liminal Space/경계지대”라는 용어가 있습니다. ‘리미날 스페이스’ 곧 ‘경계지대’는 건물에서 한 공간과 다른 공간을 이어 주는 장소, 혹은 한 공간을 들어가는데 준비단계의 공간, 곧 한 곳에서 다른 곳으로 이동하는 통로 역할을 하는 공간을 뜻합니다. 문지방(threshold)이라는 의미를 갖고 있는 이 용어는 대기실(Waiting Room), 로비(Lobby) 같은 곳을 예로 들 수 있습니다. 그리고 하루 중, 밤과 아침의 전환이 일어나는 <새벽>또한 경계지대의 한 예로 들 수 있습니다. 예수님과 가나안 여인은 바로 이 “경계지대” 곧 리미날 스페이스에 서 있었습니다. 가나안 여인에게 예수님은 <낯선 존재>였습니다. 살아오던 삶의 울타리 바깥에 머물던 존재였습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삶의 유일한 희망이 예수님께 있음을 확신했습니다. 딸의 치유를 간청하며 행한 예수님을 향한 여인의 외침은 경계지대에 서서 새로운 세계가 열릴 것을 갈망하는 몸부림이었습니다. 이 몸부림 앞에 예수님께서 서 계셨습니다. 이방 땅 두로와 시돈을 찾아 오신 예수님, 스스로 경계선을 넘어 오셔서, 경계지대에서 가나안 여인을 만나신 예수님께서는 그 여인의 절박한 몸부림을 끌어 안으시며, 그의 간절한 소망을 이루어 주셨습니다. 그리고 그 믿음을 기뻐하시며, 여인에게 새로운 세계를 열어 주셨습니다. 경계에서 만난 두 사람 예수님과 가나안 여인이 세상의 오래된 질서에 새로운 문을 열어 준 것입니다. 

사랑하는 주님의 자매, 형제 여러분, 우리는 지금 아픔의 자리에 회복과 치유를 기다리는 리미날 스페이스에 서 있습니다. 낙망과 어둠의 자리에서 희망의 새벽과 아침을 염원하는 경계지대에 서 있습니다. 우리 모두,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자리에서 <여름의 땅>이 되어 살아갔으면 좋겠습니다. 생명의 풍성한 푸르름이 어우러진 여름의 힘이 <여름의 땅>에서 비롯되듯, 우리 또한 희망과 생명과 평화의 열매를 절박하게 기다리고 있는 이들 <발밑>에서 생명의 뿌리를 붙들고, 키워내는 소망의 사람이 되어 살아가기를 소망합니다. 주님께서는 우리의 열심과 수고가 깃든 이 <여름의 땅>을 갈고, 다듬어 주셔서, 다가오는 가을 <단물이 쏘옥 든> 튼실한 열매가 우리 삶으로부터 자라나서 <절박한 기도와 바램> 가운데 살아가는 이들의 삶에 채워주실 것입니다. 우리의 옛세계를 허물고, 새로운 세계를 열어 주시기 위해 우리 앞에 계신 주님의 은총과 평강이 여러분 모두 위에 늘 함께 하시길 기원합니다. 아멘.  

헌금 & 찬양               483장  너 예수께 조용히 나가 

Offerings & Offertory Music                  

                (준비한 헌금을 정성스럽게 성경 위에 올려 놓습니다) 

감사와 봉헌의 기도   Prayer of Thanksgiving   (다음의 기도문으로 함께 기도 드립니다.)

사랑과 은총의 주님, 주님께서는 우리를 <기쁨>으로 지으셨습니다. 주님께서 세상에 나게 하신 그 이유가 <기쁨>임을 늘 잊지 않고 살아가게 도와 주십시오. 처음 세워주신 창조의 질서를 깨뜨리고, 주님께 기쁨 대신 슬픔을 안긴 우리들이지만, 주님께서는 처음의 기쁨을 늘 마음에 간직하시며, 인류의 역사를 인도하셨습니다. 2020년 여름,  어긋나 있는 창조의 질서 속에 아픔과 혼돈을 경험하며 살아가는 지구 위의 모든 생명 위에 긍휼과 자비의 은총 내려 주옵소서. 그릇된 욕망으로 세상의 질서를 어지럽혀온 사람들의 발걸음을 바로 잡아 주시고, 하나님의 기쁨으로 이 세상에 오게 된 우리의 존재의 깊은 의미를 다시 한번 분명히 깨닫게 하옵소서. 주님을 향한 예배 가운데, 우리의 감사와 정성을 모아 주님께 예물로 드립니다. 주님을 향한 정성과 마음이 주님께 기쁨이 되기 소원하오니, 주님의 거룩한 손길로 우리의 정성을 받아 주옵소서. 드리는 예물과 함께 우리의 기도를 주님께 바칩니다. 생명의 회복을 위한 기도가 있고, 아픔의 치유를 위한 기도가 있으며, 경제적 사회적 어려움으로 자유롭기를 간구하는 기도가 있습니다. 주위의 자매, 형제, 이웃 중 질병과 고통을 겪고 있는 이들을 위한 기도가 있고, 우리 자신의 영적 평안과 성숙을 위한 기도 또한 있습니다. 세상의 곳곳에 사랑과 구원과 평화의 은혜가 이루어지기를 위한 기도가 있고, 하나님 나라가 하늘에서와 같이 이 땅에 속히 이루어지기를 간구하는 기도가 있습니다. 주님께 바치는 우리의 모든 기도를 귀기울여 들어 주시고, 그 응답이 우리와 세상 가운데 이루어지게 하시며, 우리의 기도를 통해 주님의 구원의 밝은 빛이 땅 위에 비추어지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마침찬양Closing Hymn        464장 곤한 내 영혼 편히 쉴 곳과 

주기도문으로예배를마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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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든 이 시기에 우리 교회가 주님의 몸된 교회로서 그 사역을 감당하는데 어려움이 없도록 함께 해 주시기 바랍니다.

헌금방법은 현재로서 3가지입니다

1.은행을 통해 직접 Transfer하는 방법

2.헌금을 교회에 직접 보내는 방법

3.Bank of America를 통해 Online Transfer 방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