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 오전 8시에서 12시 사이에 예배시간을 정합니다. 
  • 예배 드리기 좋은 조용한 장소를 가족 혹은 개인이 선택합니다. 
  • 성경과 찬송을 준비합니다. 
  • 예배 드리는 바른 자세로 예배에 임합니다.   
  • 두 사람 이상이 함께 할 경우 인도자를 정합니다. 

조용한 기도 Invocation 

평안과 용기를 주시는 주님을 묵상하며, 조용히 기도합니다. 

Pray silently contemplating Jesus who offers us peace and courage.  

찬송 Hymn            172 빈 들에 마른 풀같이  

함께 드리는 기도 Prayer in Unison   (다음의 기도문을 함께 읽습니다.)

평안을 주시는 주님, 주님 앞에 서서 살아가는 저희들이 마음과 영혼의 자세를 늘 가다듬으며 살아가기를 소망합니다. 우리 중 어느 한 사람도 주님께서는 똑같이 지으시지 않으셨습니다.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그 인생 속에서 만들어내는 모양과 빛깔이 각각의 아름다움을 지니기 때문이겠지요? 그 아름다움을 가꾸고 발현하며 살아가기 위해, 오늘도 주님 앞에, 예배의 단정한 옷을 입고, 감사와 찬양과 기도의 알찬 알맹이들을 마음에 품고 서 있습니다. 주님의 깊은 사랑을 누리며 살아가는 저희들이 기쁨과 열심 가운데 세우는 예배의 제단 위에 주님의 성령의 은혜를 충만히 부어 주옵소서. 세상 가운데 주님을 예배하는 사람으로 살아간다는 참의미를 늘 깨닫고, 되돌아보고, 반성하며 살아가고 싶습니다. 주님을 예배하며 살아간다는 것은 주님의 마음으로 우리의 마음을 연마하며 살아가는 것임을 고백합니다. 주님, 위태한 삶의 자리에 서서 구원을 기다리는 간절한 눈빛으로 살아가는 모든 이들을 외면하거나, 지나치지 않고 살아가게 도와 주십시오. 길 잃은 양 한마리를 찾아 나서지 않고서는 주님께서 가르쳐주신 구원의 참의미를 맛볼 수 없음을 기억하게 하셔서, 오늘 우리가 살아가는 삶의 현장에서 주님의 손과 발이 되어 살아가게 하옵소서. 또한 오늘 드리는 우리의 예배가 주님의 자비로우신 은총과 사랑을 마음과 영혼 깊은 곳에 담아내는 복된 예배가 되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성경봉독 Scripture Lesson          마태복음 14:22-33

(마 14:22)○예수께서 즉시 제자들을 재촉하사 자기가 무리를 보내는 동안에 배를 타고 앞서 건너편으로 가게 하시고 
(마 14:23)무리를 보내신 후에 기도하러 따로 산에 올라가시니라 저물매 거기 혼자 계시더니 
(마 14:24)배가 이미 3)육지에서 수 리나 떠나서 바람이 거스르므로 물결로 말미암아 고난을 당하더라 
(마 14:25)밤 사경에 예수께서 바다 위로 걸어서 제자들에게 오시니 
(마 14:26)제자들이 그가 바다 위로 걸어오심을 보고 놀라 유령이라 하며 무서워하여 소리 지르거늘 
(마 14:27)예수께서 즉시 이르시되 안심하라 나니 두려워하지 말라 
(마 14:28)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주여 만일 주님이시거든 나를 명하사 물 위로 오라 하소서 하니 
(마 14:29)오라 하시니 베드로가 배에서 내려 4)물 위로 걸어서 예수께로 가되 
(마 14:30)바람을 보고 무서워 빠져 가는지라 소리 질러 이르되 주여 나를 구원하소서 하니 
(마 14:31)예수께서 즉시 손을 내밀어 그를 붙잡으시며 이르시되 믿음이 작은 자여 왜 의심하였느냐 하시고 
(마 14:32)배에 함께 오르매 바람이 그치는지라 
(마 14:33)배에 있는 사람들이 예수께 절하며 이르되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로소이다 하더라

말씀 Sermon           길 없는 곳을 길 있는듯                        최진용 목사

“Walking on a Roadless Path as if there is a road” 

  (설교문을 예배 참석자 중 한 명이 읽습니다.)

<설교문>

세상에는 여러 길이 있습니다. 사람들이 모여 사는 도시에 이루어진 길은 정리가 잘 된 길입니다. 그 길을 어떻게 다녀야 할 지 알려 주는 지도도 있습니다. 요즘은 GPS가 발달되어 사람들 사는 자리에 만들어진 길을 구석구석 안내해 줍니다. 그런데 GPS가 닿지 않는 곳이 세상에는 여전히 많습니다. 예전에 메인에서 목회하던 때, 한번은 GPS가 인도하는대로 길을 따라갔더니, 어느 집 앞마당으로 들어갔던 적이 있습니다. 순간 당황해서 차에서 내려 집 앞에서 일하고 있던 할아버지에게 자초지종을 설명했더니, GPS를 따라오다 자기 집 앞마당으로 온 사람이 제가 처음이 아니라며, 웃으면서 괜찮다고 말해 주었습니다. 

그 할아버지 집 앞에 숲이 있는데, GPS상으로는 그 숲을 통과하는 길이 있는 것처럼 나와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차를 타고서는 그 길을 지날 수 없었습니다. 한적한 오솔길이었기 때문입니다. 잘 정리된 널직한 길은 차가 다닐 수 있지만, 한적한 길을 차가 지날 수 없는 것이지요? 차를 두고 그 오솔길을 지나갈 수 없으니, 할 수 없이 숲 저편에 길을 두고, 숲을 돌아서 갈 수 없는 경험을 했습니다. 어쩌면 우리 인생에도 우리는 이와 비슷한 경험 속에 살아가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지금까지 작동하던 삶의 방식이 그 기능을 멈추고, 지금까지 따라오던 삶의 방식을 불가피하게 수정해야 하는 삶의 자리에 서게 되는 순간들이 있습니다. 

세상에는 잘 정리된 대로도 있고, 숲 속에 난 한적한 오솔길도 있습니다. 그리고 때로는 길이 없는 곳에 길을 내며 걸어야 할 때도 있습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지금의 ‘세상’과 ‘시대’가 아마도 그렇지 않은가 생각됩니다. 지난 봄부터 지금의 여름에 이르는 시간 동안, 우리는 새로운 환경에서 살아 왔습니다. <사회적 거리두기>라는 새로운 사회적 규범 속에 살아가며, 길이 없는 곳에서 길을 찾으며 살아온 셈입니다. 잘 발달된 <우리 삶의 GPS>도 지금 우리의 삶의 갈 길을 구석 구석 일러 주지 못하는 당황스럽고, 불투명한 삶의 조건 속에 살아가고 있습니다. 풍랑이는 바다 위에 있는 마음이 들기도 하고, 파도 높은 밤바다를 항해하는 것 같기도 한 것이 지금을 살아가는 우리의 마음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오늘 예배 가운데 묵상하는 마태복음 14:22-33은 <빈 들>에서 무리들과 함께 교훈과 음식을 나누셨던 예수께서 홀로 산으로 가셔서 기도하는 장면을 담고 있습니다. 오병이어의 축제를 베푸시며 “앓는 몸”을 이끌고 찾아온 무리들의 하늘에 <하늘 나라>를 펼쳐 주신 예수님께서는 이제 제자들을 ‘재촉하여 건너편으로 가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무리를 헤쳐 보내신 뒤에, 예수께서는 따로 기도하시려고 산에 올라가셨습니다. 날은 이미 저물었고, 예수께서는 산을 떠나지 않으시고 홀로 그 곳에 계셨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따라 먼저 배에 몸을 싣고 건너편을 향해 제자들은 이동했습니다. 그런데, 배에 탄 제자들은 생각지 못했던 위기를 맞습니다. 풍랑이 찾아 온 것입니다. 그들이 탄 배는 풍랑에 몹시 흔들렸고, 배를 거슬러 불어 오는 바람은 호수를 건너기 위해 노를 저어야 하는 그들의 팔을 무겁게 했습니다. 제자들의 위기는 새벽까지 계속 되었습니다. ‘홀로’ 산에 올라 기도하시던 예수님께로부터 떨어져, 그들은 ‘홀로’ 그들을 거슬러 부는 바람을 헤치며 물 위를 <배회>하고 있었습니다. 

새벽 미명에 그들의 눈 앞에 “놀라운 광경”이 펼쳐졌습니다. 마태복음 14:25-26은 그 광경을 이렇게 전합니다. “이른 새벽에 예수께서 바다 위로 걸어서 제자들에게로 가셨다. 제자들이, 예수께서 바다 위로 걸어오시는 것을 보고, 겁에 질려서 ‘유령이다!’하며 두려워서 소리를 질렀다.” 제자들은 ‘겁에 질려’ 있었고, ‘두려워’했고, ‘소리를 질렀습니다’. 이 모두가 제자들이 예수님을 보고서 한 행동입니다. 그들의 곁에 계셨던 예수님께서 그들 곁을 잠시 떠나셨다가 새벽녁 그들에게 돌아오셨는데, 그들은 자신들을 향해 오시는 예수님을 보고 혼비백산합니다. 희망을 희망으로 알아보지 못한 제자들. 구원을 구원으로 알아채지 못한 제자들. 그들은 구하러 온 손길을 ‘유령’으로 오인합니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지요? 

자신을 유령으로 착각하는 제자들에게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안심하여라. 나다. 두려워하지 말아라.”  “나다”라고 말씀하시는 예수님의 모습에서 떨기나무 가운데 모세 앞에 나타나신 하나님께서 “나는 스스로 있는 자이다”라고 말씀하신 장면이 떠오릅니다. 물 위를 <걸어오신> 예수님께서는 ‘길 없는 곳’을 ‘길이 있는듯’ 걸어 오셨습니다. 세상 어디에도 예수님께는 길 아닌 곳이 없다고 말씀하시는듯 합니다. 호수 위에 풍랑을 일으키는 그 어떤 힘도 예수님의 걸음을 흔들 수 없다고 말씀하시는듯 합니다. 물 위를 마치 땅 위를 걷듯 걸어오시며, 땅 위 뿐만 아니라 물 위도 예수님의 신적인 권위 아래 있다고 선언하시는듯 합니다. 

로마의 지배 당시 사용했던 한 동전의 앞면에는 아우구스투스 황제의 얼굴이 새겨져 있었고, 그 뒷면에는 마차를 타고 물 위를 달리는 그의 모습이 새겨져 있었다고 합니다. 당시 바다를 주관한다고 여겨졌던 신이었던 넵튠(그리스의 신 포세이돈에 대응)의 이미지와 황제의 이미지를 결합한 것입니다. 로마는 사람들의 무의식 속에 땅 뿐 아니라, 바다와 호수도 황제의 신적인 권위 아래 있다고 믿게 하고 싶었을 것입니다. 이런 시대적 환경 속에서 물 위를 걸어 오신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안심하여라. 나다.”라고 말씀하신 것은 그 바다와 호수가 황제나, 그 어떤 다른 신에 속한 것이 아니라고 선언하신 것입니다. 제자들을 <거슬러> 불어 오던 풍랑, 그것은 그들이 살고 있었던 삶의 환경을 의미했습니다. 로마의 강력한 힘 앞에 숨을 죽이고 살 수 밖에 없었던 사람들 가운데 그들이 있었습니다. 유대 지도자들은 그들의 민족적 책무를 다하지 않으며 현실과 타협했습니다. 그들이 항해하던 호수에 거슬러 불어오던 바람은 그들이 마주한 삶의 현실의 또 다른 이름이었겠지요? 이렇게 바람과 물결이 일던 호수에 ‘물 위를 길 위를 걷듯’ 오신 예수님의 <신적인 음성>, “안심하여라. 나다. 두려워하지 말아라”는 거슬러 불어오던 바람을 멎게 하는 구원의 음성이었습니다.  

베드로가 예수님께 말했습니다. “주님, 주님이시면, 나더러 물 위로 걸어서, 주님께로 오라고 명령하십시오.” 베드로의 거침없는 요청이 우리의 눈길을 끕니다. 그는 “나다”라고 말씀하시는 예수님께, 만일 그렇다면 물 위를 걸어 오신 주님께 물 위를 걸어 다가갈 수 있게 해달라고 요청했습니다. 그의 요청은 수락되었고, 그는 물 위를 걸어 주님께 갔습니다. 그런데 그것도 잠시뿐, 그는 곧 물에 빠지고 말았습니다. 마태복음은 베드로가 물에 빠지게 된 이유로 그가 <거센 바람>이 불어오는 것을 보고, 무서움에 사로잡혀서, 물에 빠져 들어가게 되었다고 전합니다.(마 14:30) 아직 풍랑이 가라앉지 않은 베드로의 인생의 호수 가운데 거센바람이 불고 있었고, 그 가운데 예수님께서 서 계셨습니다. 바람이 거세진다면, 더욱 더 뚜렷이 예수님을 향해 시선을 고정해야 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주님을 향한 베드로의 시선은 흔들렸습니다. 그의 시선이 주님께로부터 멀어져, 그의 발 밑을 흔드는 거센 바람에 닿았을 때 그의 발은 예수님께서 서 계신 물 위에서 떨어져, 물 속으로 향하고 말았습니다. 예수께서는 물에 빠져 소리치는 베드로를 물 위로 건져 올리셨고, 그가 예수님과 배에 오르자 거슬러 불어오던 바람이 멈추었습니다. 

우리 또한 우리를 거슬러 불어오는 바람을 마주하고 서 있습니다. 삶에는 늘 우리를 거슬러 불어오는 바람이 있어 왔기 때문입니다. 거슬러 불어오는 바람이 그리 거세지 않을 때도 있지만, <지금과 같이> 그 바람의 힘이 감당하기 벅찰 때가 있습니다. 우리의 풍랑이는 인생의 호숫가에 주님은 어디 계신가요? 길 없는 물 위에, 길이 있는듯 우리에게 걸어오신 주님은 ‘다만 내게서 너희 길을 찾으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땅은 주님의 것입니다. 바다도, 강도, 호수도 주님의 것입니다. 이 땅의 어느 큰 권세도 땅을 그 아래 둘 수 없으며, 바다를 그 손 안에 담을 수도 없습니다.  길 없는 물 위를 길이 있는듯 걸어오시며, <나다>라고 말씀하시는 주님은 우리로 하여금 그 진리를 잊지 않게 하십니다. 주님께서 곧 <길>이시기에, 길은 어디에나 있는 것이었습니다. 거센 바람이 물 위를 흔들 때, 우리의 할 일은 거센 바람이 아닌, 주님만을 응시하는 것입니다. 주님만 찾으면, 그 곳이 바로 우리의 길입니다. 우리의 <길>이신 주님은 길 없는 물 위를 길이 있는듯 걸어오시며, 그 길과 하나가 되어 살 것을 명하십니다. <길>이신 주님을 <길>로 걸으며, 그 <길>과 마침내 하나가 될 때까지 우리의 <믿음의 삶>이 늘 주님을 응시하기 소망합니다. 주님의 은총과 돌보심이 여러분과 늘 함께 하시길 기원합니다. 아멘. 

헌금 & 찬양                463장 험한 시험 물 속에서 

Offerings & Offertory Music                  

                (준비한 헌금을 정성스럽게 성경 위에 올려 놓습니다) 

감사와 봉헌의 기도   Prayer of Thanksgiving   (다음의 기도문으로 함께 기도 드립니다.)

사랑과 은총의 주 하나님, <여름>의 꿈은 알찬 열매를 맺는 것이듯, 우리 인생의 <여름>도 알찬 열매를 꿈꾸고 있습니다. 꿈의 노를 저으며 ‘인생의 배’를 열심히 항해해온 우리들이 우리 인생을 알차게 채울 열매를 꿈꾸며 2020년 여름을 항해하고 있습니다. 주위의 풍경과 삶의 조건이 우리의 바램과는 달리 거칠고, 가파르게 펼쳐져 있지만, 풍랑이는 물 위를 길이 있는듯 걸어오신 주님을 의지하고, 응시하며 <열매의 꿈>을 키우고자 합니다. 우리의 연약함을 도와 주시고, 우리의 믿음 없음을 다듬어 주시며, 우리의 욕심많고, 이기적인 자아를 변화시켜 주옵소서. 인생의 참된 열매는 주님께서 십자가의 사랑 가운데 깨닫게 해 주신  <사랑을 향한 순례>에 있음을 고백합니다. 우리 모두 ‘사랑’과 ‘용서’와 ‘보살핌’과 ‘돌봄’과 ‘함께 살아감’의 열매를 풍성히 거둘 수 있도록 우리를 늘 인도하여 주시고, 붙들어 주옵소서. 주님의 사랑과 은혜를 따르는 순례의 길 위에서 지금까지 도우시고, 힘 주신 은혜를 기억하고 감사하며, 정성을 모아 예물 드립니다. 예물이 쓰이는 곳마다 자비하신 주님의 은총과 사랑이 넘치게 하시고, 예물 드리는 손길 마다, 주님께서 펴주시는 은혜의 손길과 품을 만나게 하옵소서. 삶의 문제를 안고 씨름하며 주님께서 그 길을 열어 주시기를 간절히 기도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몸과 마음의 연약함과 아픔으로 상심하고, 좌절해 있는 이들이 있습니다. 숨가쁜 삶의 조건 속에 주님의 도우심을 기다리는 이들 또한 있습니다. 형편과 조건과 상황 따라 소망과 위로와 능력으로 함께 하시는 주님이시여, 주님의 크고 자비롭고 넓으신 손길로 그 필요와 아픔과 슬픔 모두를 살피고, 돌보아 주옵소서. 이 시간 이 땅 위에서 소망과 회복과 구원의 문을 찾고 있는 모든 이들 앞에 <문>과 <길>이 되어 주옵소서.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마침찬양Closing Hymn        219장 주의 음성을 내가 들으니

주기도문으로예배를마칩니다.

환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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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성으로 알려드리는 교회소식입니다

헌금안내

힘든 이 시기에 우리 교회가 주님의 몸된 교회로서 그 사역을 감당하는데 어려움이 없도록 함께 해 주시기 바랍니다.

헌금방법은 현재로서 3가지입니다

1.은행을 통해 직접 Transfer하는 방법

2.헌금을 교회에 직접 보내는 방법

3.Bank of America를 통해 Online Transfer 방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