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예배 시간: 오전 9시 30분

예배 인도: 이재숙 장로

전주 Prelude

예배로의 초대 Call to Worship


찬양 Praises

예수 안에 소망 있네 In Christ Alone

주님과 같이 There is none like You


조용한 기도 Invocation

<서로의 짐을 져 주는 삶>을  묵상하며, 조용히 기도합니다.

Pray silently contemplating the life that carries each other’s burdens.


찬송 Hymn

나는 찬양하리라

I Sing Praises to Your Name O Lord


대표기도 Congregational Prayer

이귀옥 권사


+성경봉독 Scripture Lesson

갈라디아서 6:1-10

강홍순 집사

Galatians 6:1-10

1 형제자매 여러분, 어떤 사람이 어떤 죄에 빠진 일이 드러나면,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사는 사람인 여러분은 온유한 마음으로 그런 사람을 바로잡아 주고, 자기 스스로를 살펴서, 유혹에 빠지지 않도록 조심하십시오.

2 여러분은 서로 남의 짐을 져 주십시오. 그렇게 하면 여러분이 그리스도의 법을 성취하실 것입니다.

3 어떤 사람이 아무것도 아니면서 무엇이 된 것처럼 생각하면, 그는 자기를 속이는 것입니다.

4 각 사람은 자기 일을 살펴보십시오. 그러면 자기에게는 자랑거리가 있더라도, 남에게까지 자랑할 것은 없을 것입니다. 

5 사람은 각각 자기 몫의 짐을 져야 합니다.

6 말씀을 배우는 사람은 가르치는 사람과 모든 좋은 것을 함께 나누어야 합니다.

7 자기를 속이지 마십시오. 하나님은 조롱을 받으실 분이 아니십니다. 사람은 무엇을 심든지, 심은 대로 거둘 것입니다.

8 자기 육체에다 심는 사람은 육체에서 썩을 것을 거두고, 성령에다 심는 사람은 성령에게서 영생을 거둘 것입니다.

9 선한 일을 하다가, 낙심하지 맙시다. 지쳐서 넘어지지 아니하면, 때가 이를 때에 거두게 될 것입니다.

10 그러므로 기회가 있는 동안에, 모든 사람에게 선한 일을 합시다. 특히 믿음의 식구들에게는 더욱 그렇게 합시다.


말씀 Sermon

“성령에다 심는 사람들”

최진용 목사

“Those Who Plant for the Benefit of the Spirit” Jane Chun 전도사 (통역)

<설교문>

우리를 사랑으로 돌보시는 주님의 은총이 숲과 나무 가운데 모여 하나님의 창조의 손길을 누리는 우리 모두 위에 함께 하시길 기원합니다.

오늘은 들과 숲과 나무 가운데 우리 설 곳을 마련하고, 우리 영혼과 마음 속에 <생명의 풍경>을 아름답게 그려 보는 날입니다. 우리의 마음과 영혼은 보는 것을 흡수하고, 듣는 것을 그 안에 새겨 넣습니다. 그래서, 아름다운 풍경을 눈으로 응시하는 것이 중요하고, 아름다운 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것이 중요합니다. 오늘 우리가 모인 이 창조의 동산에서 나무를 응시하며 나무를 우리 영혼 안에 옮겨놓고, 숲 속에서 노래하는 새들의 소리를 우리 마음 속에 새겨넣기를 소망합니다. 하나님께서 지으신 창조의 동산에 시시때때로 서 보는 중요합니다. 나무가 어떻게 여름을 맞이하며 푸른 옷을 입고 서 있는지, 풀은 어떻게 그 여린 모습 속에서도 강인한 생명력으로 생명의 땅을 수놓는지 느껴보면서, 우리는 한 순간도 어긋남 없이 창조의 세계를 돌보고 계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묵상하게 됩니다. 본래 하나님의 손길로 지어지고, 그 돌봄 가운데 있는 세상 만물에 사람의 욕심이 지나치게 덧입혀지며 그 질서가 흐트러지고 말았습니다. 우리가 오늘날 겪는 여러 ‘자연의 변화와 불균형과 어긋남’이 바로 인간의 손길이 제 자리를 지키지 못하고, 세상의 질서를 무너뜨리고 있기 때문에 찾아온 일들입니다. 오늘 주님의 성실한 손길이 녹아 있는 이 자연의 세계를 깊이 누리며, 짤막 해지고, 납작 해진 우리 마음과 영혼의 키와 모양이 제 모습을 되찾길 기원합니다.

우리 삶은 <모험의 장the field of exploration/adventure>입니다. 세상 누구도 인생의 길을 이미 한번 걸어보고 다시 걷는 사람이 없기에, 세상의 모든 아침과 저녁은 아직 <겪어 보지 못한 시간>으로 다가오기 마련입니다. 그래서, 인생을 <안전>하게 살고자 하는 욕구와 바램이 우리에게 있지만, 우리는 알 수 없는 순간으로 다가오는 모험과 같은 인생의 순간들을 피할 수 없습니다. 이러한 인생의 진리를 터득했던 시각 장애인 헬렌 켈러가 말합니다. “안전은 다분히 미신이다. 자연 속에 안전이란 존재하지 않으며 인류의 후예도 전반적으로 안전을 누리지 못한다. 장기적으로 보면, 위험을 피하는 것이 위험에 완전히 노출되는 것보다 안전하지 못하다. 삶이란 위험을 무릅쓴 모험이거나 아무것도 아니거나 둘 중에 하나다.” (조이스 럽 Joyce Rupp, <느긋하게 걸어라 Walk in a Relaxed Manner>, 79) 앞을 보지 못했기에 어쩌면 늘 삶이 ‘불확실하고, 불투명한 본질을 갖고 있는 것’으로 느껴졌을지 모를 헬렌 켈러가 전해주는 인생을 향한 통찰이 우리의 정신을 깨우는듯 합니다. ‘위험을 피하는 것이 위험에 완전히 노출되는 것보다 안전하지 못하다’는 그의 말이 인생의 깊은 지혜를 깨우친 현자(a master of wisdom)가 알려주는 인생의 비밀 같이 느껴집니다. 결국 위험을 피하면서 매번 인생을 살아갈 순 없는 것이기에, 오히려 위험 없이 살고자 애쓰는 인생의 길이 더 위험할 수 있다고 말해주는 헬렌 켈러의 인생을 향한 잠언(proverb)이 인상적입니다.

오늘 묵상하는 갈라디아 교회에 쓴 편지를 기록한 사도 바울의 인생도 <모험이었고, 위험을 감수하는 불확실함의 연속>이었을 것입니다. 지난 주간 동안 가족 여행 길에 올라 모르는 길을 찾아 움직이면서, GPS가 안내해 주는 지도에 한 순간도 눈을 뗄 수 없었습니다. 모르는 길을 꽤 오랫동안 운전해야 했기에, 지도에 전적으로 의존하며 행선지를 향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그 먼 옛날 바울이 복음을 전하던 그 길에는, 갈 곳을 안내하는 상세한 지도가 기록되어 있지 않았습니다. 바울을 비롯한 복음의 전도자들 모두가 <새 길>을 떠났기 때문입니다. 그들에게 전해져 내려온 ‘유대교가 안내하던 지도’에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걸어 가셨던 ‘고난’과 ‘십자가의 길’과 ‘대속의 죽음’이 기록되어 않았습니다. 죽음의 장막을 걷어내고 펼쳐 주신 부활의 새벽빛도 기록되어 있지 않았습니다. 때문에, 바울을 비롯한 초대교회의 신앙인들에게 <믿음의 삶>과 <믿음의 여정>은 <모험의 연속>이었고, <불확실한 미래>를 <삶의 벗>으로 받아들이는 <용감한 길>이었습니다.

‘믿음의 모험가’인 바울이 새로이 걸어갔던 길, 그것은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와의 만남으로 인해 그에게 새롭게 열린 길이었습니다.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그는 이제 관습을 따라 살지도, 편견에 잠겨 살지도 않게 된 <자유인>이었습니다. 갈라디아서 5:1에서 바울이 말합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해방시켜 주셔서, 자유를 누리게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굳게 서서, 다시는 종살이의 멍에를 메지 마십시오.” 바울이 말하는 ‘자유’는 ‘율법의 짐’으로부터의 자유였고, 율법에 매여 살아갈 때 우리가 빠지게 되는 ‘편견과 판단과 정죄로부터의 자유’였습니다. 바울이 이어서 말합니다. 갈라디아서 5:2- 6 말씀입니다. “나 바울이 여러분에게 말합니다. 여러분이 할례를 받으면, 그리스도는 여러분에게 아무런 유익이 없습니다.  내가 할례를 받는 모든 사람에게 다시 증언합니다. 그런 사람은 율법 전체를 이행할 의무를 지닙니다. 율법으로 의롭게 되려고 하는 사람은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지고, 은혜에서 떨어져 나간 사람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성령을 힘입어서, 믿음으로 의롭다고 하심을 받을 소망을 간절히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는, 할례를 받거나 안 받는 것이 문제가 되는 것이 아닙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믿음이 사랑을 통하여 일하는 것입니다.” 바울 스스로가 할례 받은 사람이었고, 따라서 그가 크리스천 되었을 때 그는 할례받은 유대 크리스천(Jewish Christian)이었습니다. 그런데 바울은 할례도, 율법을 지키는 삶도, 그리스도인이 되는데는 아무런 <유익>이 없다고 단언합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율법 혹은 율법의 행위가 아닌, 오직 그리스도께서 <사랑>과 <희생>을 통해 이루신 <구원의 은혜를 믿는 믿음> 만으로 구원에 길에 들어서게 되었고, 의롭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바울에게 이렇게 <새 길>을 걸어갈 용기와 확신이 있었던 것은 무엇 때문이었을까요? 어떻게 바울은 ‘아직 지도가 만들어지지 않은 새 길’을 확신과 용기 속에 걸어갈 수 있었을까요? 어떻게 바울은 할례 받은 유대인으로 살아오며 율법을 준수하는 삶을 가장 우선시 하며 살아오다가, 할례도 우리 삶에 유익하지 않고, 율법을 지키기 위한 열심이 오히려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지게 하는 그릇된 열심이라고까지 말할 수 있었을까요? 갈라디아서 5:24-25에 그 이유를 짐작해 볼 수 있는 힌트가 담겨 있습니다. “그리스도 예수께 속한 사람은 정욕과 욕망과 함께 자기의 육체를 십자가에 못박았습니다. 우리가 성령으로 삶을 얻었으니, 우리는 성령이 인도해 주심을 따라 살아갑시다.” 그는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경험하면서 육신에 속한 것들 모두를 십자가에 못박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이제 <성령으로 삶>을 얻게 되었고,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살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바울이, 지도 없이 떠난 복음 전도자의 길을, 두려움 없이, 용기와 확신 속에 걸어갈 수 있었던 이유였습니다.

오늘 우리가 예배 가운데 묵상한 말씀은 바울이 갈라디아 신앙 공동체에게 전하는 편지의 결론에 해당하는 부분입니다. ‘그리스도로 인해 영혼의 자유함을 경험’하게 되었고, ‘성령으로 삶의 의미가 보람’을 얻게 되었으며, 이제 ‘율법이 아닌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살게 된 바울은 갈라디아 교인들에게 보내는 편지의 마지막에서, 믿음의 공동체를 이루는 모든 사람들이 서로 서로의 짐을 져 주며 살아야 한다고 권면합니다. <새 길>을 걷는 <믿음의 모험>의 길에 함께 올라 있는 사람들끼리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살아가며, 서로를 바로 잡아 주고, 서로의 어깨에 지워져 있는 삶의 짐들을 져 주며 살아가야 한다는 것이 갈라디아 교인들에게 전하는 그의 편지의 마지막 당부였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주님의 자매, 형제 여러분, 우리 모두에게는 살아가며 <삶의 어깨> 위에 올라간 ‘삶의 짐들’이 있습니다. 사람에게는 각자 <자기 몫의 짐>이 있기 때문입니다. 청년의 때에는 청년의 때 주어지는 자기 몫의 짐이 있습니다. 자신의 미래를 스스로 일구어 가며, 꿈을 세우고, 세운 꿈을 이루기 위해 성실하고, 열심히 힘을 모아야 하는 삶의 짐이 있습니다. 장년의 때에는 장년의 때 그 어깨에 지워지는 자기 몫의 짐이 있습니다. 함께 살아가는 가족을 돌보며, 자신에게 주어진 일에 꾸준히 힘쓰고, 이웃과 사회를 구성하는 구성원이 되어 책임과 과제를 수행하는 삶의 짐이 있습니다. 노년의 때에는 노년의 때에 찾아오는 자기 몫의 짐이 있습니다. 삶의 의미를 정리하고, 살아온 날들의 가치와 보람을 주위에 나누고 전하며, 삶의 지혜로 누군가의 길을 안내하는 책임과 짐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삶의 짐들을 혼자서 감당하며 지고 갈 수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사람의 능력과 힘에는 늘 한계가 찾아오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서로 “비스듬히” 기대어 살아갈 수 밖에 없는 존재들입니다. 제가 여러번 읊었던 시인 정현종의   <비스듬히>라는 시를 기억하시지요?   ”생명은 그래요./ 어디 기대지 않으면/ 살아갈 수 있나요?/ 공기에/ 기대고 서 있는 / 나무들 좀 보세요. // 우리는 기대는 데가 많은데/ 기대는 게 맑기도 하고/ 흐리기도 하니/ 우리 또한 맑기도 하고/ 흐리기도 하지요. // 비스듬히 다른/ 비스듬히를/ 받치고 있는 이여.” 시인의 말처럼, 서로 기대고 서 있는 나무들처럼, 우리는 서로 비스듬히 기대어, 서로를 받쳐주고, 지탱해 주며, 함께 어우러져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갈라디아 교회들’에게 쓰는 편지의 결론에서 바울은 말합니다. “여러분은 서로 남의 짐을 져 주십시오. 그렇게 하면 여러분이 그리스도의 법을 성취하실 것입니다.”(6:2) 우리에 앞서 믿음의 모험을 감행했던 사도 바울이 갈라디아 교인들, 그리고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를 향해 전하는 편지입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삶의 모든 자리가 그러하듯, <믿음의 자리> 또한 홀로 고립되어 서 있을 수 없는 자리입니다. 서로가 서로의 손을 잡아 주며, 끌어주고 붙들어 주며, 함께 걷는 <연대의 길>이 ‘믿음의 여정’이요, ‘믿음의 삶’인 것입니다. 이러한 함께 가는 믿음의 여정을 위해 사도 바울은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삶의 지혜들을 알려 줍니다. 그에 따르면, 각 사람은 자기 일을 살펴 보며, 겸손하고 성실하게 살아야 합니다. ‘아무 것도 아니면서 무엇이 된 것처럼 생각하며 살아가는 안된다’고 바울은 말하며, ‘자랑을 삼가하고,’ 각자 ‘자기 몫의 삶의 짐을 지며’ 살아야 함을 강조합니다. 또한 우리는 ‘모든 좋은 것을 함께 나누며,’ ‘자기를 속이지 말고,’ ‘육체가 아닌, 성령에다 삶의 노력과 수고를 심으며,’ ‘성령께서 거두게 하시는 영생의 열매’를 쫓아 살아야 한다고 사도 바울은 우리에게 권면합니다.

오늘 우리가 함께 한 예배의 자리에서 우리는 어떤 모습으로 서로를 향해 서 있습니까? <비스듬히> 기대어 살아가야 하는 것이 우리의 인생이기에, 우리는 서로의 짐을 서로 져 주며, 모든 좋은 것을 함께 나누며 살아야 할 것입니다. <성령에다 심는 사람들>은 다름 아닌, 서로의 곁에 사랑과 보살핌의 나무를 심어주며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또한 <성령에다 심는 사람들>은 믿음의 모험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들입니다. 우리가 모험을 주저하는 이유가 여럿이 있겠지만, 그 중에 ‘실패에 대한 두려움,’ ‘지닌 것을 잃을 것 같은 염려,’ 그리고 ‘아직 겪어 보지 않은 삶의 순간을 향한 불확실함’ 등이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의 인생길은 걸어 보기 전에는 미리 알 수 없는 것이요, 겪어 보기 전에는 그 결과를 알 수 없는 것입니다. 조이스 럽은 스페인의 산티아고를 걸었던 경험에서 얻었던 <모험의 의미>를, 그의 책 <느긋하게 걸어라>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모든 날이 새로우며 그래서 모든 날이 모험임는 나는 카미노에서 서서히 배웠다… 우리 삶의 모든 자리는 살아 볼 때까지는 모르는 것이다. 이런 자세로 임하면 삶이 늘 신선하고 활기차며 생동감과 의욕이 넘치게 된다… 모험은 마음을 열고 위험을 감수하는 자세에 달려 있다. 삶은 하품이 날 정도로 뻔하고 따분할 수도 있고, 뜻밖의 사연과 성장으로 충만할 수도 있다. 그것은 우리가 삶을 어떻게 보고 그 삶에 자신을 어떻게 맡기냐에 달려 있다. 일상의 풍경은 같아도 우리의 내면은 매번 다르다. 언제나 뭔가 새로운 것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거기에 우리 자신을 열기만 한다면 말이다.”

– 조이스 럽 Joyce Rupp, <느긋하게 걸어라 Walk in a Relaxed Manner> 89-90

조이스 럽의 말처럼, ‘우리 삶의 모든 자리는 살아 볼 때까지는 모르는 것’이고, 삶은 ‘위험을 감수하는 모험’을 통해 <뜻밖의 사연과 성장>으로 충만할 수 있는 것이기에,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삶의 모험>을 감행할 <믿음과 용기>입니다. 우리 모두 <성령에다 삶의 수고와 씨앗>을 심으며, 썩어 없어진 육신의 열매가 아닌, 영생의 문을 열어 줄 <성령의 열매>를 거두며 살아가길 기원합니다. 우리에게 익숙한 갈라디아서 5:22-23에 나오는, 바울이 말하는 <성령의 열매>가 있습니다. ‘사랑’과 ‘기쁨’과 ‘화평’과 ‘인내’와 ‘친절’과 ‘선함’과 ‘신실’과 ‘온유’와 ‘절제’입니다. 우리 모두, <성령에다 심는 사람들>이 되어 이러한 성령의 열매를 풍성히 거두며 살아가길 기도합니다. 우리 삶은 모험을 통해 성장하고, 모험은 믿음과 용기가 없이는 가능하지 않습니다. 지도 없이 복음 전도자의 길을 떠났지만, <성령의 인도하심> 속에, 걸어갈 선하고 바른 믿음의 길을 늘 찾았던 사도 바울처럼, 오늘, 하나님께서 지으신 창조의 동산에서 우리를 지으신 하나님의 손길을 느끼는 우리 모두에게 <성령의 인도하심>이 늘 함께 하시길 축원합니다. 아멘.


특별찬양 Special Music “참 아름다워라”

속장 연합


헌금 & 찬양

447장 오 신실하신 주

다같이

Great is Thy Faithfulness

Offerings & Offertory Music 

(** 마지막 절은 일어서서)


+감사와 봉헌의 기도

Prayer of Thanksgiving

기도인도: 최진용 목사


+결단찬양Closing Hymn

나의 믿음 주께 있네 In Christ Alone

+축도   Benediction

최진용 목사

+가능하신 분만 일어서서  Please stand, as you are able

환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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